조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가지 속성을 이해하고 실천했던 김종필 전총리가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대일협상에서 '이완용'이라 비난받고 또 김대중과 연합하며 '변절자'라 비판받으면서도 시대에 앞선 소신을 가지고 일했던 정치인이다.  

비열한 정치보복이 난무한 시대에서 유모어와 여유를 가지고 협치할 줄 알았던 인물로 한국정치사에 중요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내각제를 지지했던 것은 한국인들에게도 설득과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인생은 짧다 시시하게 굴지 마라" 그는 다정한 혁명가였다

[중앙일보] 입력 2018.06.23 12:07 수정 2018.06.23 14:30

김종필은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대한민국 근대화를 성공시켰다.1960년 79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70년 254달러→80년 1645달러→90년 6147달러→2000년 1만841달러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2017년 북한의 1인당 소득은 한국의 70년대 중반 수준인 1300달러, 통계청). 2차대전 뒤 세계의 신생국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경제 성장이다. 1960~80년대 산업화의 성공은 도시에 탄탄한 중산층 세력을 성립시켰다. 도시의 중산계층은 한국의 또 다른 기적인 정치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와 김종필이 이끈 ‘조국 근대화’‘민족 중흥’의 성공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판을 완전히 뒤집었다. 김종필은 자신이 주도한 한국 산업화의 역사를 “민주주의는 피를 먹기 전에 빵을 먹고 자란다”는 말로 요약했다. 

~ 김종필 현역 시절의 마지막 드라마는 DJP 공동정권이다. 호남과 충청이 지역연합을 했다. 1997년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JP는 이회창 대신 김대중의 손을 잡았다.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기록이다.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정책협약문을 작성했고, 내각의 비율을 6대4로 나눴으며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총리의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보수세력에서 JP 변절자론이 쏟아졌다. 다수의 정치학자들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을 탄생시킨 전략적 선택이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놀라운 통합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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