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교수가 조선일보에 자신과 전두환 전직에 관련한 칼럼을 게재하여 본인은 핍박을 당했으나 '지도력이 있고 당당한 인물로서 우리 역사에 과보다 공이 크다'고 평가했다. 독재자에게 어찌 공이 크냐 반문하겠지만 그 인물이 부하 전문가를 믿고 전적으로 위임했던 일이 민주화 정신이며 6.29 민주화선언이 그 결과로 나온 것이라 보면 이해 가능하다.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는 어떤 평가를 하실까. 


[Why] 집 냉면 초대에 측근 50명 몰고 와… 그의 '보스 기질' 참 굉장했다

입력 : 2017.12.09 03:01 | 수정 : 2017.12.10 08:56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4) 전두환(1931~)

날 중정 지하실로 데려가 교수직 물러나라고 강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훗날 전두환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의 과(過)보다 공(功)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그의 인간성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보안사령관이 되어 권력의 정상을 향해 가고 있다고 여겨질 때 항간에 나돌던 말이 있다. 그가 연대장이 되면 그의 연대에 끼어들기를 바라는 대대장이 많았고 사단장이 되면 그 사단에서 연대장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대령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의 밑에 있으면 신분이 보장되고 진급도 빠르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와 손잡고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그는 한번 믿은 사람은 죽는 날까지 믿어주고 밀어준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그가 '의리의 사나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도 까닭이 없지 않다. 그는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을 존중했다. 전문가들에게 그는 "나는 한평생 군인이라 이 분야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제발 이 일을 전적으로 맡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모르는 일에 나서지 않았고 엘리트들을 전적으로 신임했다.


~ 치욕의 계절을 다 이겨낸 인간 전두환은 아직도 건재하다. 정초에나 그의 생일에는 많은 하객이 찾아가는 것이 사실이고 일 년 내내 그를 예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공(功)이 있고 과(過)도 있기 마련이다. 민주화의 훈풍을 기대하던 온 국민에게 찬바람이 불게 한 그의 잘못은 두고두고 역사가 흘겨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그가 조국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실은 앞으로도 높이 평가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통령 전두환은 죽는 날까지 누구를 만나도 당당한 인간으로 살 것이 분명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8/2017120801867.html


이순자, 자서전서 비화 털어놔…"우리 내외도 5·18사태 희생자"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24일 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12·12 쿠데타 전날 전 전 대통령이 잠자리에서 한 말을 비롯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털어놨다.

또 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단어가 된 '29만 원'에 얽힌 뒷이야기와 장영자 사건 때 이혼을 결심했던 개인사까지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 '29만 원'은 추징당한 후 휴면계좌에 붙은 이자 = '전 재산이 29만 원 밖에 없다'는 발언은 오랫동안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는 2003년 서울지법 서부지원의 재산명시 심리에서 전 전 대통령과 담당 판사가 은닉 재산의 유무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거진 발언이다. 당시 담당 판사가 "예금채권이 30여만 원 정도만 기재돼 있고, 보유 현금은 하나도 없다고 나와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전 전 대통령은 "사실대로 적은 것이다. 본인 명의는 없다"고 답했는데 이 발언이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말한 것처럼 와전됐다.

이 여사는 당시 연희동 집은 물론, 기타 부동산과 서화류, 사용하던 골프채까지 망라해 재산명시서에 기록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마지막 완성본을 읽어본 전 전 대통령이 혹시 통장에 얼마간의 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니 알아보라고 해 검찰이 금융자산을 추징해간 휴면계좌에서 29만1천 원의 이자가 발생한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여사는 "소액이지만 정확을 기하는 의미에서 29만 원도 기재했는데 일부 언론이 마치 그분이 29만 원밖에 재산이 없다고 주장한 것처럼 왜곡해서 보도했다. 그 이후 29만 원은 그분을 조롱하는 상징이 됐다"고 적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24/0200000000AKR20170324197400001.HTML


'전두환 추징금'을 50% 환수하는 데 19년이나 걸렸다

연합뉴스

게시됨: 2015년 11월 10일 17시 38분 KST 업데이트됨: 2015년 11월 10일 17시 40분 KST DEFAULT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율이 50%를 넘었다. 대법원 확정 판결 19년 만이다.

서울중앙지검은 10일 기준으로 전 전 대통령의 전체 추징금 가운데 50.86%인 1천121억원을 환수했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1996년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으로 추징금 2천205억원이 확정됐지만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1/10/story_n_8519032.html


12 12 사태, 전두환 "내 사적인 권력 추구?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머슴처럼 일했다"

입력 2017-12-12 (화) 16:08:27 | 승인 2017-12-12 (화) 16:09:17 | 최종수정 2017-12-12 (화) 16:09:17

12 12 사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12 12 사태는 38년 전인 지난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 승인 없이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날이다.

전두환은 이듬해 5월 17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그해 9월 대한민국 제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출간한 회고록을 통해 12 12 사태에 대해 "시대의 요청"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어떤 이들은 아직도 12 12 사태가 내 사적인 권력 추구의 출발점이라고 단정하지만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낸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다"며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정승화 당시 육군 참모총장을 체포한 것은 하극상이나 쿠데타가 아니라 김재규와 함께 박 전 대통령 살해에 가담한 공범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부으며 머슴처럼 일했다"며 "5공화국을 권위주의 통치시대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머슴처럼이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시간이 없어 강력한 통치력 발휘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http://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85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