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고 하였다. 인간의 제한된 지식과 지혜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도저히 추구할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지금까지 항상 더디 믿으며 의심많은 도마처럼 손으로 마져야만 믿을 수 있었던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나의 테네시 대학 유학 생활은 낭만적이고 즐거웠던 추억보다는 산을 오르내리며 인적이 끊긴 숲속에서 채집과 조사를 실시하며 때를 따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던 일들로 이어진다. 

 

아파라치아 산맥의 고산들을 넘으며 나무와 비와 바람과 안개속에서 본 것은 넓고 깊은 하나님의 품속이었다. 무엇이 나로하여금 고독과 두려움과 회환과 추위와 목마름이 기다리고 있는 산과 광야로 헤매게 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나를 부르던 그 손짓은 아마도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산과 광야로 불러내어 그곳에서 주님은 나의 교만을 꺾으시고 나의 믿음을 단련시키신 것이다. 광야를 때리는 천둥번개 소리가 그렇게 무섭고 장엄한 줄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시야를 가리는 지척간의 숲속에서 들리는 짐승의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와 나무 가지들이 부러지며 울리는 짐승의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조이며 두렵게 하는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주님은 갈길을 몰라 헤매는 산속을 인도하시고 짐승의 위협에서 보호하시며 어두움 가운데서 불빛으로 인도하시면서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주님앞에 무릎을 꿇고 어린 아이처럼 기도로서 주님께 매달리는 방법을 친히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나를 한 사람의 기독인 과학자로 양육시키셨다. 근대과학은 중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사상에 자리잡은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서 태어났고 근대과학과 기독교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잇으며 그런 면에서 기독인 과학자라는 직책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매우 적절한 직분인 것같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갈릴레이는 우주를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진 하나의 책으로 보았으며, 철학은 우주라는 책속에 쓰여있다고 하였다. 그가 비유한 책은 성서를 지적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에게 우주는 제2의 성서였다. 우주로부터 하나님의 지혜를 읽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측량한 것이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변호하며 쓴 ‘천문대화’가 원인이 되어 신앙적 핍박속에서 종교재판까지 받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과학을 연구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나 역시 생명과학의 한 분야를 연구하면서 갈릴레이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신앙과 이성 그리고 종교와 과학의 대립과 모순속에 갈등을 해 왔으며 이와 같은 주제를 기도 제목으로 주님 앞에 내놓곤 하였다.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기원과 생물의 진화라는 대명제에 봉착하게 된다. 최초의 생명은 어떻게 탄생됐으며 그 생명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인가? 창세기 1장은 각 생물이 모두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창조된 종류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고 나의 머릿속을 언제나 맴돌곤 하였다. 아마도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성경에 언급된 종류(kind)를 생물학에서 생물의 기본단위로 정의하는 종(species)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에 창조된 종류에서부터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종으로의 발전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동식물들은 제외하고서라도 모든 환경에 편만해 있는 미생물의 수효는 아직 그 종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론자들은 매일 수백종의 생물들이 멸종되어가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종의 가변성에 근거하여 신종 출현의 법칙을 이론화하고 있으며 분자생물학자들은 소위 molecular priest로 불리우는 DNA를 임의로 조작하여 유전기작과 현상을 분자수준에서 밝히고 있으며 육종학자들은 상품성과 응용성이 뛰어난 새로운 형질의 품종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 사람들은 전례없는 복제 동물에 이어 인간 복제로 인한 클론 인간의 등장까지 우려하게 되었다.  

 

1992년 로마 교황은 교회가 갈릴레이를 비난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선언하였고 1996년 10월에는 진화론이 가설 이상의 사실임을 인정하였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갈릴레이를 단죄하던 카톨릭이 이를 인정하고 이제 진화론마저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 종교 개혁의 시대와는 달리 생명과학에 관한한 카톨릭이 바로 오늘의 종교계에 프로테스탄트라고 볼 수 있다. 교황의 메시지는 “과학과 신앙이 다같이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점을 확인시킨 것이다. 피조물이 조물주의 창조역사 과정과 그 진위에 관하여 논하는 것은 외람되고 불경스럽다. 그러나 이를 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기독인 과학자의 모순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성서를 자연과학이나 천문학 교과서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겉다. 

 

창세기 1장은 생물학자인 나에게 언제나 사도신경과도 같은 고백서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창조주의 엄숙한 선언인가? 하나님은 창조 역사에 이어 당신의 세계를 자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자연법칙으로 만유인력의 법칙과 생물진화의 원리를 두신 것으로 믿는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계는 우리가 차고 다니는 기계 또는 전자식 시계와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나로서는 교회와 기독교를 왜곡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일로 시험을 받는 일이 없도록 권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