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3 때 열심히 공부했으나 대학입시에 실패하였다. 어려운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하여 애쓰시는 어머니께 죄송하였고 아들에 대한 기대로 사셨던 아버지께 실망을 끼치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낙방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서는 오히려 찹쌀떡을 사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 한 해 더 공부하는 동안에도 교회 생활은 착실히 하였고 가끔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하기도 하였지만 내 삶에 실제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음해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하였고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 돌아보니 입시에 실패하고 일 년 더 공부하였던 기간은 원하던 학교에 가기위한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전 생애를 인도하시는데에 꼭 필요한 기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오게 된 나는 단지 교회생활을 착실히 하는 수준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신앙적으로 자라고 싶었다. 기숙사에서 대학생선교회에 다니는 선배를 통하여 말씀을 배우고 믿음의 형제들과의 사귐을 통해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감격이 있었다. 만일 일년 일찍 대학에 왔더라면 이 귀한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을깨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요한복음을 정독하며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말씀을 규칙적으로 묵상하면서 믿음이 조금씩 자라게 되었다.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아침마다 기숙사 뒷 언덕 너머 있는 버들골 잔디밭에서 맑은 햇살아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시골길 같이 한적한 학교 뒤 순환도로를 산책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보냈던 때가 떠오른다.  목사나 선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어디에서든지 평생 복음전도의 삶과 제자양육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다. 나중에 주께서 나를 다시 캠퍼스에 보내어 주신다면 제자를 키운다는 제자의 삶을 살겠노라고 기도하곤 하였다. 믿음의 친구들을 만났던 대학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대학원을 마치고 85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고생만 하신 홀어머니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유학생활에서도 교회생활을 착실히 하였고 학생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메마른 기간이었다. 실험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전하였고 마음 고생이 많았다. 장래가 어둡게 보였다. 연구하는데는 하나님이 관여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때때로 주님께 지혜를 구했지만 응답이 없었고 암담하였다. 학교 일에 쫒기어 정신적인 여유를 잃고 말씀 묵상하는 일을 게을리하니 영적으로 곤고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밤 늦도록 실험에 몰두하는 날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졸업을 반 년 정도 앞두고도 계획하였던 화합물에서는 기대하였던 결과를 얻지 못하여 지도교수님은 지금까지 한 일의 결과를 정리하여 졸업논문을 쓰라고 하였다. 나는 졸업을 읒추어서라도 좋은 결과를 얻고 싶었다. 그때 전에 만들어 두었으나 별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석에 버려두었던 화합물을 꺼내어 밤중에 실험하는 중에 내 눈을 의심할 수 박에 없는 결과를 관찰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실수로 물이 들어가서 이상한 현상이 보인 것이라고 생각되어 같은 실험을 여러번 반복하였으나 매번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좋은 연구결과가 쏟아지게 되었다. 졸업을 넉달 연기하면서 실험을 계속하였고 좋은 논문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 당시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후배들이 계속하여 좋은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마음 뿌듯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분명하였다. 논문 발표를 마치고 박사후 연구과정을 위하여 보스톤으로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도 청년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여전히 영적으로 메마른 기간이 계속되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영적으로 곤고하니 속사람이 탄식하고 내 속에 계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요 7:37-39) 이런 성경의 약속들이 나에게는 실제로 경험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나는 여전히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 모습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외침이 내 속에 있었다. 매년 연말이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면 감사할 일도 많았지만 영적으로 곤고한 삶은 여전하였고 믿음의 진보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보스톤에서 만난 믿음좋은 친구와 한번은 뉴저지에 있는 교회에서 열리는 원단 금식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영혼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회개의 문이 열리고 내 속에서 담대한 기도가 풀어져 나왔다. 성령님이 도우시는 기도를 체험하게 되었다. 매일 저녁 교회문을 혼자 열고 지하실에 들어가 말씀보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시간은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 유학생활의 외로움이 사라지고 주의 은혜가 내 안에 넘쳐나이다라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그 기간은 하나님께서 나를 한국에 보내시기 전에 속사람을 새롭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시는 시간이었다. 그때쯤 모교에서 교수를 채용한다는 공고가 났다. 처음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고 응모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하리라고 작정하였다. 매일저녁 교회에 달려가 기도하였다. 기도하는 날이 쌓일수록 내 마음에 담대함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문을 여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더 열심히 기도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매일 아침 금식하며 기도하셨다고 한다. 대학 시절에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훈련받게 하시고 광야같은 유학생활 중에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고 기도를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나를 모교에 주님의 동역자로 부르실 것이라는 생각이 기도하면서 더욱 강하게 들게 되었다. 

 

발표가 나던 날은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리라는 확신 가운데 기도하고 돌아왔다. 한밤중에 지도교수님에게서 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모교에 부르신 것은 학교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고 마음이 약한 자를 세우시기 위하여 나를 부르신 것이다. 이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캠퍼스에 돌아와 보니 생각하고 기도하던 것처럼 복음사역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 일에 쫒기다 보니 쉽게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곤 하였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더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동료 교수들을 보내 주시어 우리는 매주 함께 모여 기도하게 되었다. 교수기도회에서 만난 교수님들은 모두 학원 복음화에 대한 영적 부담을 갖고 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쉽게 낙담하고 현실에 적당히 안주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학원복음화의 몸을 이루게 하셔서 서로에게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되게 하신다. 

 

우리는 캠퍼스에서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젊은이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이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분의 사랑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하여 가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