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자. 바른 길을 찾아 모두 함께 나아가려고 이 글을 읽는 당신과 그 감사를 나누고 싶다. 우리에게 삶을 허락하시고 오늘이 있게 하시었고 보모님을 통하여,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을 주위에 허락하시어 이끌어 주심과,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납하심을 감사하자.

 

나의 아버님은 목사이셨다. 어린 시절 무척이나 가난하였지만 그러나 신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머님의 기도소리 가까이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행복하게도 나는 복음의 큰 반발 없이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러나 나의 의지로 그분을 영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유아세례자가 하는 입교문답도 대학졸업이 가까울 때까지 보류하기도 하였다.  대학졸업 후 전문의가 되어서 군대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해군병원 기지병원에서 소그룹 성경공부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서 갑자기 내면의 마음 문이 열리며 “무엇을 더 이상 망설이고 있는가. 이제는 주님을 영접하자. 더 이상 거부하지말자.”라는 확신이 서게 되었다. 

 

마음 문을 열 때 아무 것도 없는 진공의 상자가 조그마한 구멍이 뚫릴 때 갑자기 주위의 대기압에 의해 꽉 차게 되듯이 비었던 나의 마음이 충만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대기에 충만한 주님의 은혜였다. 나를 둘러싸고 충만히 거기 있으면서 내가 조그마한 문을 열기만을 그토록 오래 기다리셨던 것이다. 구후 나는 영접한 아들이 되었다.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고 봉사할 수 있게 되었고 어디로 나를 보내시는가 생각하며 있는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의학은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으로 나눌 수 있다.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인체의 수많은 정상변이와 개인차이는 다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가 이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는가? 인체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우리가 알게되면 될수록 우리는 그 신비함에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보기위한 눈, 듣기위한 귀, 말할 수 있게 만들어 둔 성대와 입술, 호흡과 취각을 위한 코, 손과 발, 우리 몸의 어디가 원천적인 설계의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나.

 

손과 발의 구조에서는 손가락 하나하나로 가는 혈관과 신경의 분포가 감탄스러울 따름이고 운동을 위하여 인대가 근육으로 연결되어 바이올리니스트의 묘한 손놀림이 가능해 진다. 거기에는 빠른 움직임으로 인한 마찰을 줄이기 위한 윤활유가 있고 손의 곡선을 따라 미관상 인대가 솟구쳐 오르지 않도록 테이프로 감듯이 인대를 묶어두는 장치가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모두 살아 있는 세포가 그 기능을 담당하며 필요하면 멤버가 교체되면서라도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뿐이랴. 일찍이 다윗은 시편에서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시편 139:13)라고 고백하였다. 여기서 장부라함은 오장육부의 준말로 체내 모든 장기를 지칭하며 모태에서 조직하셨다함은 모태에서 태생학적으로 각 장기의 조직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인체구조의 신비는 무궁 무진하게 우리 속에 내재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경계를 대학시절에는 알수 없었다. 정확히 학문의 끝간데를 알 때는 전문과목을 방사선과학으로 선택한 후였다. 과학잡지의 논문을 대하거나 직접 저자가 되어 논문을 작성하다보면 그것은 개미가 티끌을 날리며 뛰어 가지만 인간이 보기에는 미미한 것처럼, 참으로 거대한 학문 앞에서 한 컵의 물을 부어 놓고 만족해 하는 모습이다.  임상에서도 수많은 환자를 대하지만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이고 많은 경우 진단은 하였으나 치료할 방법이 없어 환자를 내보낼 수 밖에 없고 병원 문밖을 나서기가 무섭게 전혀 근거 없는 사이비 의술에 농락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의료계에 상황이다. 

 

지식을 양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겠으나 요즘에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지식의 분량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CD-ROM으로 최근의(1997년) 방사선과학 잡지의 내용을 수록한 디스켓에는 최근 10년간 300여잡지에 수록된 모든 방사선 관련 논문을 다 수록하였다 한다. 논문 수로 말하면 잡지 한 권에 20편이라할 때, 1년에 10회, 300종류에다 10년을 곱하면 600,000편의 논문이 나온다. 얼마나 방대한 지식인가? 그러나 그것이 디스켓 한 장에 들어가 있다. 그 중에서 나의 논문은 20편이라 할 때 정말 나의 독창성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말 그대로 쥐꼬리만한 지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질병에 걸린 환자를 차료하여 건강을 회복시키는데 있다. 임상의학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환자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섭리를  그 속에서 먼저 볼 수 있어야 참다운 의학도라 할 수 있다. 창조본연의 모습이 건강한 상태라 규정한다면 건강은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영적이며 사회적인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신과 자연과의 조화스러운 관계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조화가 깨져 불안하고 지치고 병든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조화롭게 바른관계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 임상의학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학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인간의 육체만을 다룬다. 영혼이나 하나님과의 바른관계나 심지어 사회나 이웃과 자연과의 바른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의 육체에 있어서도 모두 분과별로 나누어 나는 신경전공, 나는 눈 전공, 심지어 작은 눈 속에서도 나는 각막전공, 나는 망막전공, 등등으로 나누고 있다. 그 속에서 환자는 방황할 수 밖에 없고 실망하기 일수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기독교 의료계에 있다. 

 

1980년 11우러 모교에 교수로 발령받은 후 1983년 미국으로 연수가서 Boston, Brigham & Women's Hostital에서 연수를받았다.  나는 나의 논문을 그 병원에서 나를 지도해 주던 Bettmann 교수의 교정을 받고 유명한 학술지인 「American Journal of Roentgenology」 84년호에 실리게 되었다. 당시로는 퍽 드문일이라 기분이 좋았지만 욕심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았다. 「Radiology」등 여러 학술지에 10편 이상 실렸다.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은 학문적인 이러한 성취감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느껴지는 것은 몇 편의 논문이 유명 잡지에 실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많은 환자를 대하면서 느끼는 것은  환자를 앞에 둔 의사의 역할이 너무나도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치료를 하여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좋아질 경우가 많다. 의사의 자존심에 대하여 극도로 나를 혼란에 빠트린 경우를 몇년전 경험하였다. 환자는 중년 남자이었고 간암환자이었다.  많은 간암환자에 대하여 간동맥색전술로 치료하였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 환자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로서 수개월을 버티기 힘든 경우라는 판단이 섰다. 우리는 치료를 포기하였다. 단순히 그 사실을 혈관촬영에서 확인만 하고 그 환자는 퇴원하여 집으로 둘아갔다. 그러나 그후 망각 속으로 살아졌던 그 환자가 깨끗하게 치유되어 사소한 다른 이유로 1년남짓한 세월 후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그 증례를 내과 방사선과 증례토론회에서 다루었으나 치유된 경로를 알 수 없었다. 소위 자연치유라는 것이 가능하다. 거기에는 병을 진행시키는 힘이 있고 또한 병을 치유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또 의사만이 병을 고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험이 경험 많은 의사들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We care, God heals” 라는 말이 새롭다. 

 

현대에 와서 의료윤리에 여러가지 문제로 하여 생명나무가 도전을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인간은 좋은 의미이든 싫은 의미이든 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전공학을 통하여 복제인간을 탄생시킴으로 생명의 창조주에게 도전하는 것은 분명 갈때까지 간 인류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의료인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 창조주에게 도전하여 끝내 자초할 무서운 파멸을 예고하고 말려야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의료인들을 복음화 하고 또 학창시절에 믿음을 유지발전시켜 기독교적 의료문화를 이루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현재는(1997년) 생명의료윤리 연구회가 발족되어 월 1회 정기모임을 가지고 여러 가지 관련 윤리문제를 다루고 있다. 1981년 서울대학교 병원 내에 기독전공의 모임을 만들었다. 그 바쁜 수련의 일정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은 어김없이 모여서 성경읽고 기도하던 많은 후배들이 이제는 각자의 직장에서 나름대로 훌륭한 신앙싱천을 하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주일 외에도 나는 일주일 중 몇 번의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 모임을 통하여 자신과 동료들과 후배들이 함께 말씀을 나누며 서로의 성장을 확인한다. 월요일 점심은 기독교수 성경공부 모임, 화요일은 본과 3,4학년학생 모임, 목요일은 기독전공의 모임을 갖는다. 

 

이 글을 읽어주신 귀한 분들께 주님의 사랑을 드리며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말씀을 소개함으로 이 글을 맺으려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참고: 박재형 교수님은 지금도 서울대병원교회에 대표로 서울대 병원 관계자들의 신앙성장을 위해서 헌신하고 계신다. 사시는 곳도 벽제 산 속에 노인 복지 요양원에서 함께  사시며 그 먼길을 매일 출근하신다.   나는 서울대 병원 수간호사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교수님의 헌신을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