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서울공대 64학번 화학공학과 졸업

  

대한민국은 625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면서 5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로 급성장했다. 쉬운 일을 아니겠지만, 만약 올해 국민 1인당 GDP3만 불을 넘어서서 우리나라가 30-50 클럽(1인당 GDP 3만 불 이상, 인구 5천 만 명 이상 국가)에 가입한다면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태리에 이어 7번째로 가입하는 나라가 된다.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쾌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가 1960년대에 시작된 과학입국, 기술자립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들과 근면하게 땀 흘려 일한 국민 덕분이었다. 이런 성장의 중심에는 과학기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3% 전후의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고 있으며, 여러 가지의 정치적사회적 갈등요소들이 불거지면서 우리나라가 미래를 향하여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과학기술인 본연의 임무와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과학기술인은 어떤 자세로 이 사회에서 살아나가야 하는가?

2015410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이 심포지엄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된 것은 이태리의 도시 라퀼라 지진사건이었다. 200946일에 규모 6.3의 지진이 라퀼라에 발생하였고, 주민 309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지진이 나기 전 1주일 전에 소집된 재난위원회에서는 지진경보를 발령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위원장이 하였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검찰은 결국 2010년에 재난위원회에서 활동한 지진과학자 6명과 위원장(공무원) 1명을 지진 예측에 실패하였다는 이유로 기소하였고, 20121심에서 이들 7명에 대하여 징역 6, 벌금 1,000만 유로라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서 판사는 위원회 소속 과학자들이 거짓 정보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고했고, 이탈리아 고등법원은 2014년에 지진전문가 6명은 무죄로, 위원장은 2년형으로 감형하는 2심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과 시민단체는 2심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항고하였으며, 재판은 진행 중이다.

이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연 거대 재난의 상황에서 과학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내놓은 결과에 대하여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지어야 하는가? 라퀼라 사례처럼 한국도 사회를 뒤흔드는 큰 사건들(예를 들면, 광우병 사태, 천안함 침몰, 4대강, 세월호 사건 등)에서 과학기술자에게 책임있는 해석을 요구하는 기대심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경우에 과학기술자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은, 발생된 사건에 대해서는 과학기술 지식과 정보를 국민에게 알고 있는 그대로 용감하고 진솔하게 공개하고, 자연재해 예측의 경우에는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정보의 발생확률을 적용해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서 자문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과학기술자들은 바른 지식에 기반하여 정직하게 자문활동에 임해야 한다. 절대 이해득실이나 편견을 가지고 자문하는 행위는 금물이며, ‘과학기술 발전이 곧 국가발전이라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문활동에 임해야 한다.

두 번째로, 18.8조원(‘15년 기준)에 달해 국가 총예산의 약 5%를 차지하는 정부 R&D 연구비 집행에 대하여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연구비는 국민의 혈세임을 인식하고, 과학자의 직업적 양심을 가지고, 필요 이상 또는 자기 능력 이상의 예산을 받으려 하거나, 규정에 위반되게 집행하려 들면 안 된다. 연구와 관련하여 불필요한 여행비용이나 회식 비용을 사용하여서도 안 된다. 연구자는 오직 좋은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하여 수반되는 경비만을 규정에 근거하여 양심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이것이 연구자의 책임이다. 차츰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연구자들의 자율과 책임 문제는 성숙하여 갈 것으로 믿는다. 또한 과학기술자들은 성추문과 같은 비윤리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두운 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윤리적인 일부의 사건이 있지만 과학기술인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고, 지식인으로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여야 한다.

세 번째로, 21세기가 과학기술의 시대이고 국력은 국민에게서부터 나오므로, 과학의 대중화, 과학문화의 확산에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광우병 사태, 천안함 폭침 사건 등에서 보았듯이 비과학적인 편견이 팽배하면서 국가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분열이 일어나고 있으며, 엄청나게 필요 없는 국가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합리적인 과학문화 확산에 과학기술인들은 앞장서야 한다. 또한 과학문화 확산에 필수적 요소인 과학교육에도 과학기술자들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년 9월에 발표된 고등학교의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총론에 보면 과학교육의 최소이수단위가 12단위로 발표되었는데, 이는 과학교육이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책과 개선책도 과학기술인들은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들어 중고등학교에서의 과학실험교육이 많이 부실하여졌다고 한다. 이는 대학입학시험 방법, 수능시험 방식 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대학에서의 과학교육자의 양성, 과학기술자의 관심 부족 등에도 원인이 있다. 과학실험교육 강화를 위하여 과학기술자들이 다같이 지혜를 짜내어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과학실험교육이 중요한 것은 체험을 통해 청소년들이 과학기술자의 꿈을 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과학이론, 특허, 신제품 개발 등은 이러한 꿈과 비전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청소년들이 이런 꿈을 꾸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과학기술자들의 책무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화 시대를 맞이하여 과학기술의 글로벌 리더십 확립에 과학기술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하여야 한다. 21세기는 국가 간의 활발한 교류가 국가의 발전을 촉진한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가 어려웠을 때 다른 나라들에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지금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들을 도와야 하며, 이러한 나눔과 베품을 통하여 우리나라도 더욱 성장할 것이다. 과학기술 공적개발지원(ODA) 사업도 강화하고, 과학외교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런 중심에는 물론 과학기술자들이 제 역할을 담당해 주어야 한다. 필자가 속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도 다른 나라들의 한림원(academy)들과 함께 공동심포지엄 등을 자주 개최하면서 상호 협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은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분야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립하는데 기여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리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과학입국, 기술자립을 선언하면서 산업화에 성공한 것을 본받아 이제는 2의 과학기술입국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여야 한다. 이 길만이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다. 과학문화를 확산시켜 재난재해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도, 각종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지구촌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기 위해서도 과학기술인들이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우리나라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자율과 책임의식으로 무장하여 연구, 교육, 과학문화 확산에 열정을 가질 때,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강국이 될 것이며, 우리의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과학기술인들이 앞장 서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