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칼럼] 은퇴 공직자의 헌신과 감동(I)
김하중 저, ‘젊은 크리스천들에게’대한 서평
2015-12-18 11:06:17               

머리말: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주는 은퇴 공직자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
본서는 최장수 중국대사 및 통일원 장관 등 36년 외교관으로 공직생활을 지내고 은퇴한 김하중 장로(아래, 저자)께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공직 입문과 공직 생활과 은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상기하면서 오늘날 젊은 이들에게 인생의 길에 대한 교훈을 들려주는 자서전으로 엮어진 감동적인 삶과 신앙의 이야기다. 자신이 살아왔던 공직자로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피력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무게있으며 설득력이 있으며 금(金) 같은 값어치가 있다. 저자는 이 저서에서 사회적으로는 엘리트였으나 젊은 시절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던 날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친과 아내의 기도와 딸의 금식으로 은혜로 찾아와 주신 하나님을 만난 과정, 그리고 이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진 인생 방향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이 책은 학자가 이념적으로 사상을 전개하거나 소설가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꾸며낸 젊은 청년들에게 보내는 글이 아니라 36년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길을 자료로 하여 삶의 이야기를 쓴 글이기 때문에 문장 하나 하나가 버릴 것 없는 하나의 금언(金言)으로서 오늘날 젊은 이들과 신자들이 가야할 인생의 길을 바르게 제시해주는 너무나도 값진 인생 안내서다.
I. 외교관으로서 공직자의 삶
저자는 1994년 가을 베이징 한국대사관 공사 시절 딸의 금식 기도로 인해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1995년 외무부의 아태국장(아시아태평양국장)으로 발령을 받아 귀국 사흘 전 세례를 받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저자는 이 세례식에서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계기를 체험하게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저자는 공직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피력하고 있는데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는 모범적인 공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공직에 있어서 성실, 청렴, 공평무사하려고 했으며, 사려깊은 윗사람 존중, 동료 배려, 아랫사람 돌봄,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삶의 전환에는 하나님 성령과의 동행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1. 성실하게 봉직
저자는 1973년 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 근무를 시작해서 국장이 되기까지 22년이 걸렸고 국장에서 외무부 장관 특보, 대통령 의전비서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주중국대사, 통일부장관 등 고위공무직을 역임하면서도 여전히 나태하지 않고 성실히 봉직한 것을 피력하고 있다: “그 14년 동안 나에게 육체적으로 안락했던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항상 나라와 하나님에 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위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기도 하느라 늘 잠이 부족했고, 마음 놓고 쉬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280쪽).
첫째, 그의 성실한 봉직의 예는 우리가 잘 아는 1997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황장엽 망명사건 처리에서 나타난다. 당시는 1992년 국교가 맺어진 한중 관계의 시작 시기인 것을 감안하면 35일 만에 해결되어 황장엽이 한국으로 오게된 것은 당시 장관 특보인 저자가 가진 중국 외무부의 인맥(왕광야 국제국장, 양제츠 미주 부국장, 우다웨이 아주부국장, 왕이 아주부국장)에 연유된다. 저자는 협상 능력도 필요했지만 하나님의 간섭과 도우심이 필요한 것을 느껴서,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낮에는 중국과 교섭, 밤에는 호텔에서 기도”(149쪽)함으로써 원만한 처리(북한, 한국, 중국 세 나라 모두에 해가 되지 않는 처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망명이 성사된 후 정부로부터 자신에 대한 유공자 포상을 사양하고, 포상을 다른 분들에게 돌렸다는 내용은(151쪽) 감동적이다.
둘째, 주중 대사 봉직 기간 동안 1,000명이 넘는 탈북자를 한국으로 송환했다. 저자가 주중 대사로 부임한 다음 해인 2002년 봄부터 탈북자 문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중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닌 북한이 관여된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외교협상만 가지고 해결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피력한다: “정말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했다.”(254쪽) 그는 기도할 뿐 아니라 곧 다가올 탈북자의 유입에 대하여 사전에 준비하는 자였다: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했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마음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탈북자의 진입을 기다렸다.”(255쪽)
2002년 5월 말부터 탈북자들이 주중대사관 영사부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힘든 물밑 협상을 통해 탈북자 24명이 전부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가는 것이 허가됐다. 그후 영사부에는 매일 평균 100 여 명의 탈북자들이 들어와 있었고, 한때는 수용 인원이 170명까지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주중대사로서 이 사태를 원활히 해결하기 위하여 비상대기조를 운영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탈북자들을 돌봐주었다. 총영사를 비롯한 직원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을 돌봐주었다. 저자는 피력한다: “나도 대사로 있는 동안 출장을 제외한 휴일이나 주일에도 늘 출근을 했읍니다. 항상 사무실에서 대기하면서 일이 발생하면 총영사와 함께 바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였읍니다. 나와 총영사, 영사부 직원들은 말 그대로 대사관의 비상대기조였읍니다.”(258쪽) 그는 영사부에 진입한 탈북자들이 당하는 어려움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비상대기하면서 이들의 탈북을 도와주어 한국으로 송환하였다.
저자의 대사 재임 기간 2002년 5월부터 2008년 2월까지 5년 9개월동안 탈북자들이 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 건수가 400여 번이었다. 이들 중 자진 퇴거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전부 한국으로 송환되었는데 그 숫자는 1,000명이 넘었다(260쪽)고 한다. 그리고 중국 내 다른 나라 외교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이 약 200회에 걸쳐 600여 명이었는데 이들 또한 전부 한국대사관에서 중국 정부와 교섭하여 한국으로 송환했다. “결국 5년 여의 기간 동안 600여 회가 넘게 진입한 탈북자 1,700여 명을 한국으로 송환한 것이었읍니다.“(261쪽) 저자가 2008년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중국을 떠나기 모두 1,700여 명 탈북자들을 송환하였다고 한다.
셋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관련부서 직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저자는 이 탈북자들의 큰 숫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렸다. 그는 다음같이 회고한다: “나는 이 숫자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탈북자 문제가 시작될 때 하나님께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1,000명의 목숨을 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어주신 것이었습니다.”(260쪽) 그는 이 놀라운 성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고 관련부서 직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나는 보고를 받고 나서 혼자 무릎을 꿇고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대사관에서 한국으로 송환한 1,700여 명의 탈북자 이외에도 중국을 거쳐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간 수많은 탈북자로 인해 중국 정부와 관련부서 직원들이 겪은 고통과 어려움을 위로해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261쪽)
2. 청렴하게 봉직
저자가 청렴하게 살았다는 것은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되었다. 국회 청문회 사상 도중에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관한 결의를 한 것이다. 2008년 3월 1일 청와대 고위 인사로부터 통일부 장관 내정 통보를 받고 청문회 참석 전에 잠간 들린 통일외교통상위원장실에서 인사청문회 위원들이 그가 ‘통과되는 데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아들이 다 군대에 갔다 왔고, 재산도 별 볼 일이 없고, 주중대사만 오래 했으니까요”(266쪽). “자료를 봤더니, 장관 내정자의 재산관계나 병역문제 또 자녀들의 병역 문제 모두 다 훌륭하게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직자로서 흐트려짐 없이 공직생활을 잘 하신 것에 대해 먼저 평가들 드립니다”(267쪽).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사례를 말하면서 앞으로 공직자가 되려는 젊은 이들에게 ‘청렴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열심히 일하고 말을 조심하고 돈을 가까이하면 안됩니다.”(303쪽)
3. 공평무사하게 봉직하였다.
저자는 청와대 의전비서관 시절 근무 시 어떤 인사들과도 외부에서 만나지 않고 대부분 혼자서 식사(162쪽)하였다고 한다. 저자는 어느 외부인사를 통해 미국대학에서 제안된 김대중 평화센터 건립안에 대한 비서관으로서의 자신의 태도(165쪽)를 알려준다. 비서관으로서 그는 당시 ‘국난의 상황에서 평화센터 건립은 적절히 못하다’고 반대했다.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나?’고 하는 외부인사의 질책에 대하여 “저는 이곳에 출세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165쪽)라고 대응한 그의 봉직태도는 공평무사했던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당시 자신의 근무태도에 관해 다음같이 알려준다: “그로 인한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나는 공적인 자리가 아닌한 가지 않았고, 어느 누구와도 사사롭게 만나지 않으려고 극력 노력했습니다. 대통령과 지근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189쪽)
4. 상사, 동료와 부하에 대한 원만한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저자는 외무부 및 청와대 근무시절 직장의 상사, 동료, 아랫사람에 대하여 원만한 관계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윗 사람을 모시는데 무조건적 복종이 아니라 분별력있는 처리를 하고자 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아닌 것은 아니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으며, 분명이 안되는 이유를 정리하여 보고하여 만류하였다.(170쪽) 이희호 여사 주변사람들의 추진행사에 대해 올바른 보고를 하였다.(190) 그는 다음같이 피력한다: “상사를 주께 하듯 섬기라. 사랑으로 정직하게 보고. 신임을 받으려면 자신의 노력이 중요하다.” 정직하게 보고하려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각고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윗사람이 물어보기 전에 보고하고 일을 시키기 전에 준비해야 합니다. 윗사람이 물어보려고 전화하면 즉시 대답하고 보고를 올려야 합니다.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말은 안됩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310쪽). 이것이 가능하겠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다음같이 대답한다: ”정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생각한다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둘째, 동료들을 배려하는 의리있는 마음(겸손과 온유와 양보)(311쪽)이 요청된다. 겸손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저자는 외무부 장관 특보시절 1급 승진 명단에서 빼달라고 해서 빠졌다(152-3쪽).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신앙인으로 덕이 되지 않은 것 같아서(153쪽)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그가 자신이 승진에서 빠진 것을 확인하고 드린 다음 기도는 그의 동료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덕을 말해준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드리고..” “나는 남보다 승진도 빨리하고 중요한 보직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이 상처를 받음은 물론, 그들의 평온한 마음에 시기와 질투를 불러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상각했습니다. ..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회를 양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312) 공직생활에서 중요한 국면인 승진에 있어서 보여준 저자의 양보와 배려와 겸손의 미덕은 경쟁의식과 다툼으로 인해 얼룩진 오늘날의 직장생활에 있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해준다.
셋째, 아래 사람에게는 항상 의와 공평을 베풀라. 저자가 외무부 국장으로 봉직했을 때 학연과 지연과 혈연의 고리를 끊고 청(청와대 근무)비(장차관 비서실 근무)총(총무과 인사계 근무) 출신을 제끼고 성실한 과장을 미대사관직원으로 추천한 이야기도 참신하고 감동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사람을 본받지 말고 학연과 지연과 혈연의 고리를 잘라 버리고 항상 부하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314쪽)고 천명한다.
5. 누구를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는 신앙으로 공직수행
저자는 그가 했던 성실하고 청렴하고 원만한 공직수행은 신실한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시간만 나면 어디서건 잠간이라도 기도”했다. 새벽기도회 나가고 “사무실로 가는 동안 지동차 안에서 기도”(163쪽)했다. 그는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깊은 감사”(167쪽)를 했다.
저자는 중국 사스 사태 때 교민들이 찾아와 철수명령을 내려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민들을 보호해 주심을 믿고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를 다음같이 회상한다: ”나는 사스가 끝날 때까지 우리 국민들이 사스에 감염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을 졸이면서 수없이 기도해야 했습니다.. 정말로 사스가 6월 말에 진정되도록 수없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28) 저자는 평양 정상회담 시에도 눈물로 이 회담의 성공을 위하여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북한 땅을 사랑하시고, 이 북한 땅에서 하루 빨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도록 눈물로 기도했다. 그리고 내가 흘리는 눈물이 언젠가 이 땅에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도록 기도했다.”(188쪽) 이 국면도 그가 진정한 개인의 안일보다 나라와 교민을 위한 진정한 길을 소신있게 추구한 공작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 신앙과 공직 삶이 일치: 공직 근무처를 믿음의 훈련장으로 생각
저자는 청와대 근무시작하면서 대통령을 위한 중보기도를 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 가서 기도하고, 퇴근해 돌아와서 기도했다.(205쪽) 그는 성령님으로 인해 항상 미리 준비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다음같이 자기 성찰을 했다고 회고한다: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고 편안하고 순탄하게 살아오면서 그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의지하려 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206쪽). 그는 “청와대는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준비하신 훈련장”(207쪽)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자는 2001년 10월 중국 대사로 갔을 때 “하나님의 대사”로 임직하고자 했다. “나라의 대사이지만 하나님의 대사로 살아”(210쪽)가고자 했다. 육신의 기도는 내려 놓았다. 그는 두가지 방향의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 가난한 자를 위한 기도“(212쪽)를 하기로 뜻을 정하였다고 한다. 그는 대사 재직 동안 1,000여명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냈고 마약사범이나 감옥에 수감중인 한국인을 위하여 기도하였다(213쪽)
그가 직장을 구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기복신앙을 윤리신앙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의 신앙이 진실로 성경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몸 담은 조직이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기를 강요하다면 여러분은 그 조직에 계속있어서는 안됩니다.”(318쪽) “만일 여러분이 그 풍요로운 삶을 포기할 수 없어서 세상이 속삭이는대로 계속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며 산다면, 아무리 십일조를 잘 내고 교회에 중보기도를 부탁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한다 해도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319쪽) 이 대목은 기복신앙에 사로잡혀서 열심을 가진 신자들이 잘못 세상적 번영과 출세 욕심에 사로 잡혀서 윤리와 법질서를 도외시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바른 성경적 태도를 제시해 준다.
7. 하나님의 대사로 살고자 함
저자는 2004년 12월 25일 온누리 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으면서 오직 한가지의 소망을 피력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213쪽)이었다.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라의 대사로서의 업무를 처리해 나갔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기도, 하나님의 통치가 내가 일하는 이 중국 땅에서 그리고 대사관에서 이루어지기를 워하는 기도..를 했습니다”(254쪽). 이러한 그의 태도에서 구약에서 신앙의 유대인 포로 공직자 다니엘의 모습이 연상된다.
정부의 대사와 하나님의 대사는 저자의 인격 속에서 다른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다고 평가된다. 그는 두가지 직분이 그의 공직수행에서 분리되지 않고 합일되도록 노력하였다. 그는 회상한다: “나에게는 일 년 365일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매 순간 하나님께 엎드려 눈물로 그분의 보호하심과 자비하심을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이런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여유롭고 안일하고 행복한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나라의 대사로서 또한 하나님의 대사로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습니다.”(265쪽) 이러한 신행일치의 공직수행은 그를 세상에서도 최장수 대사라는 명예로운 결실을 얻도록 하였다. 그는 다음같이 회상한다: “나는 중국 근무를 마치고 돌아 올 때 역대 직업 외교관 중에서 최장수 대사라는 영예를 안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였습니다.”(265쪽)
이러한 저자의 회고담에서 영국, 미국, 독일 등 선진 기독교국 그리스도인 공직자에게서나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되어온 공직자와 신앙인의 이상상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열심히 봉직하고자 노력한 한 신앙적 공직자 안에서 조화되고 구현되는 것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는다. 이는 오늘날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정신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진정한 자극과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계속)

*김영한 박사는 본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