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전 숭실대 교수(현 기독학술원 원장, 본회 증경회장)

 

종교 개혁의 정신: 하나님 말씀의 재발견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기독교는 유물종교나 제사종교가 아니라 말씀의 종교다. 예수님은 구약의 성전과 제사와 율법 대신에 사랑을 가르쳤다.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예언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구약종교가 제사와 율법에 지우쳤는데 반해서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을 가르치면서 성전과 제사와 율법을 넘어서는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하나님 사랑과 성도의 인격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통하여 발전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제도권에 들어갔을 때 로마의 미신과 결합하면서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중세 천년을 거치면서 전혀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변질된 미신적 기독교가 되었다. 

1. 제도적이고 미신적으로 변한 중세 기독교

종교개혁은 인문주의 정신과 함께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운동(Ad fontem movement)이었다. 초대교회의 십자가의 도는 에밀 브룬너(Emil Brunner)가 지적한 바같이 E. Brunner, Das Mißverständnis der Kirche, Stuttgart: Evangelischer Verlag, 1951, 42-46  
 중세 천년을 지나오면서 많은 인위적인 것이 가미되어 본래의 복음과는 전혀 다른 제도적이고 기구적인 것으로 변모되었다. 하나님 말씀은 교리로 보충되었으며, 인격 공동체가 기구로써, 인격적 신앙이 교리적 신앙과 도덕법으로 대체되었다. 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개정증보판, 서울: 기독교서회, 2003, 140-142
 세례와 성만찬으로 집전된 초대교회의 성례전은 중세교회로 들어와 7개로 늘어났다. 7가지 성례전은 7성사(聖事)라고 하는데 7성사는 성세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 신품성사, 고백성사, 종부성사, 혼인성사로 나누어진다. 성세성사란 세례라는 기독교적인 정결의례를 말하고, 견진성사는 입교(入敎)라는 종교적 성인식을 말하고, 성체성사는 성만찬을 말하는데 떡과 포도주를 먹는 의식을 말한다. 여기서 떡은 예수의 몸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예수의 피를 의미한다. 그다음 신품성사는 사제를 임명하는 의식이고 고백성사는  신부에게 고해(告解), 즉 신부가 죄인을 대신해 하나님에게 용서를 비는 의식을 말하고, 종부성사라는 것은 병든자를 위해 해주는 의식인데 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의식이고 혼인성사는 결혼하는 이들을 위한 의식을 말한다. 

초대교회에서 없었던 성인들과 유물들의 숭배도 대중적인 인기 속에서 추가되었다. 성 안나(St. Anne)는 광부들의 성인(聖人)이었고, 성 조지(St. George)는 말타는 자들에게, 성 야고보(St. James)는 순례자들에게 성인이었다. 안토니(Anthony)는 돼지를 보호하였고, 아폴로니아(Apollonia)는 치통을 치료하였고, 세바스챤(Sebastian)은 페스트를 물리쳤다.  Walter von Loewenich, Martin Luther. Der Mann und das Werk, Munich: Paul List Verlag, English translation, (Minneapolis: Augusburg Publishing House, 2002), 박호용 역, 『마르틴 루터. 그 인간과 그의 업적』, (서울: 성지출판사, 2002), 47
 유물들은 십자군들에 의해 제공되었다. 솔기없는 그리스도의 옷은 트리오(Trio)에 전시되었고, 아헨(Aachen)에서는 아기 그리스도의 기저귀가 쾰른(Köln)에서는 세 왕들의 시체가 전시되었다. 마리아와 성인들을 위한 기도, 죽은 영혼을 위한 미사(彌撒, missa)들이 드려졌다. 마리아는 여신으로 숭배되었고, 그리스도조차도 마리아에 의하여 무색하게 되었다. 

중세인들에게 로마는 순교자의 무덤과 성물(聖物) 등의 많은 보화가 보존되어 있는 성지였다. 칼릭스투스 (Calixtus) 성당 지하실에는 40여 명이 넘는 교황들의 유해와 7만 6천여 명의 순교자들이 묻혀 있었다. 그 리고 다른 성당에는 소위 모세가 본 가시 떨기나무, 헤롯에 의하여 죽임 당한 아이들의 뼈가 300개나 있으 며, 바울의 쇠고랑,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이 사도 요한의 목을 잘랐다는 가위,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여 받았다고 하는 동전 하나가 전시되고 있었다. 교황청에서는 성자들의 유해를 숭배함으로 큰 은덕을 입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로마 순례는 하나의 큰 축복이었다. 심지어 교황 레오 10세는 각 유골에는 4,000년의 연옥 형기를 감해 주는 효과가 있고, 심지어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 때 받은 동전 하나를 소유하면 1,400년의 면죄 효과가 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비텐베르그(Wittenberg)의 성채교회의 유물들을 숭배함으로써 사람들은 거의 2백만년의 면죄를, 할레(Halle)에서는 거의 4천만년의 면죄를 받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박호용 역, 『마르틴 루터. 그 인간과 그의 업적』, 48
 이는 인격적 기독교가 유물의 종교와 미신의 종교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신령한 은혜는 믿음이 아니라 교회의 제도와 의식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성상(聖像)과 신성한 유물같은 물질의 매개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이장식, “영성과 설교,”  제 16회 기독교 학술원 영성 포럼 자료집, 2011년 11월 3일, 4면  
 영적 은혜가 유사물질적인 것으로 변질하고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와 그리스도의 영적 몸으로 변하는 것으로 오도되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순수한 믿음으로 구원얻는 초대기독교는 중세 천년을 거치면서 대중적이고 미신적인 것이 가미되어 하나의 미신적인 종교로 변질하고 있었다.  

2. 근원(초대교회, Ad fontem)으로 되돌아가는 영성: 공동체를 회복하는 영성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미신적 종교가 되어버린 제도적 기독교로부터 원시적인 기독교, 초대교회의 예배와 의식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관하는 신성한 창고처럼 되어 버린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은혜와 하나님 만남의 처소로 복권시키고자 하였다. 인격적인 신앙의 공동체의 단순한 의식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였다. 화려하고 복잡한 인위적인 예전(禮典)을 수정하고 초대교회의 단순한 예전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격적 현존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었고, 그 방편은 성경에 대한 연구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1511년, 수도사 루터는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겪은 내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에 파견되었다. 루터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룩의 계단’(scala sancta)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필사적인 수행에 몰두하였으나, 그의 고민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듯 보였다. 어떤 공적功績이나 선행으로도 근원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광명이 찾아든다. 1512년, 그는 로마에서 돌아와 어거스틴 수도원 다락방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저 유명한 ‘탑의 경험’(turmerlebnis)을 하게 된 것이다. 로마에서 돌아온 루터는 수도원장 슈타우피츠(Johannes Staupitz)의 권유를 따라 비텐베르그 대학의 교수가 되어 수도사요 성경학자로서 성경을 연구하여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1513년부터 2년 간 시편을, 1515년에는 로마서를, 1516년에는 갈라디아서를, 1517년에는 히브리서를 강의하였다. 

   루터는 시편강의에서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를 연구한다. 그는 시편 31편 강의에서 하나님의 의가 불의한 자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의를 발견한다. 그리고 시편 70편과 71편에서도 같은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 개념 앞에 루터는 절망한다. 루터는 “로마서 강해”를 하면서 자신의 내적 고민을 해결할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서 1장 17절, 즉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루터가 수도원 안에 살고 있을 때 그에게 신은 죄인을 단죄하는 공포의 신으로 제시됐고 그 때문에 그는 항상 신을 향한 두려움과 원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인간은 오로지 신의 은총으로만 구원받고 신앙 안에서만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루터는 믿음으로써 새롭게 태어난 것 같았고 여기서부터 성경 말씀이 그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갈망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의로우시 다’라는 그런 의미인 줄로 생각했다.… 나는 주야로 생각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은혜와 긍휼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의(예수=복음)를 의미하는 것이요, 또 우리가 그 의(복음)를 믿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의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는 ‘복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능동적으로 계시하시고 그 의를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신앙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뜻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았으며, 크게 열려진 문을 통하여 바로 천국으로 들어간 듯 했다.” Mackinnon, Luther I, 151; Philip Watson, Let God be God! 1947, 아장식 역, 『프로테스탄트 신앙원리』, 컨콜디아서, 1963, 48.
고 하였다. 사실 그의 고민은 정당한 것이었다. 인간이 제아무리 선을 행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깨어있는 영혼과 양심을 지닌 인간이라면 당연히 번민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참된 기쁨, 즉 죄사함의 기쁨의 근원을 사도 바울의 로마서로부터 발견하게 된 것이다. 루터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justitia Dei)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참 기쁨의 원리를 전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향해 베푸시는 은혜이며 믿음으로 전가(轉嫁, imputatio)되는 수동적인 의(justitia passiva)였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얻게 되는 ‘칭의’는, 하나님의 주동적인 역사의 결과이지 인간의 선행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 즉 죄사함과 칭의를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된 까닭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박호용 역, 『마르틴 루터. 그 인간과 그의 업적』, 성지출판사, 55
 종교개혁의 운동이었다. 신앙과 행위의 규범과 척도는 교회의 관습이나 회의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며, 성경에 비추어 모든 교회의 설교와 교리와 성만찬론과 신앙 관행(면죄부 판매, 성인, 성상, 성물 숭배 등)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잘못된 모든 관행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7가지 성사(聖事)는 다시 초대교회의 두가지 성례전(세례와 성찬)으로 환원되었다. 

맺음말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도 무속신앙과 결합하여 기복종교의 요소가 적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바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이 말씀에 음미하여 우리의 잘못된 기복신앙, 성공지향적 신앙, 현세지향적 신앙, 출세 지향적 신앙, 물질지향적 신앙은 말씀의 신앙, 십자가의 신앙,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하여는 보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읽고 명상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 말씀인 성경 위에 굳건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본회 회지인 <<서광>> 제23호 통권 제32호(2015년)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