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울대기독학생연합 (서기연) 대표 정재아 자매 (건설환경공학부 13)


* 이 글은 서울대 기독교선교회 소식지 <<진리는 나의 빛>>에 실린 것을 저자의 동의를 받아 게재합니다. 본회가 연말에 발행하는 소식지 <<서광>>에 게재하는 것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진나빛의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17년 서기연 대표로 섬기고 있는 건설환경공학부 13학번 정재아입니다.

어느새 1학기도 끝나가는 이 무렵, 제가 서기연 대표를 하게 된 지도 벌써 세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서기연 대표로의 부르심을 묻고 따라온 과정을 나누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표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기도하던 지난겨울을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그때의 마음을 보니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오늘 이 자리까지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누게 될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대단히 아름다울 것은 전혀 없는 이야기이지만, 부족한 제 모습 너머에 언뜻 하나님의 은혜가 엿보이는 그런 무엇이기를 기대하며, 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겨울, .

이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추웠던 지난겨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때의 저는 마치 해가 다시 떠오르기 직전의 가장 깊은 어둠속에 있는 것처럼 어디를 보아도 깜깜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설명하려면, 그동안 제가 해왔던 대학생활에 대해 조금이나마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꽤 열렬히 사랑하게 되어서,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해 준 공동체가 고마워서 저는 대학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선교단체에 기꺼이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나라라는 이상을 꿈꾸며 사랑에 제 자신을 소진하다 보니, 예수님이 아닌 저에게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른 일들도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제 나름의 끝까지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과 상황을 볼 때마다 제 안에는 상처와 실패감이 조금씩 쌓여갔는데, 어느 샌가 그것들이 제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4학년을 마치고 선교단체를 졸업할 무렵에는, 저는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헌신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제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는 그 미해석의 시간들을 마음 한편에 남겨둔 채 리더의 옷을 벗고 거울을 보니 졸업을 앞두고 스펙이라고는 한 개도 없는 초라한 대학생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4학년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진로에 대한 여러 고민 끝에 제가 내렸던 결론은 유학을 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원 서류에 포함되는 GRE와 인턴경력, 에세이와 추천서(를 받기 위해 쌓아나가야 할 교수님과의 관계) 등을 이제부터 준비해야 했고, 무엇 하나 만만지 않은 그 커다란 과제들은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세상의 기준에서 한 것 없이 보낸지난 4년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겹쳐져, 저는 2017년은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진로 준비에만 전념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확고한 마음을 가진 상태로 전 대표인 조예상 형제로부터 서기연 대표 제안을 받았고, ‘솔직히 저는 정말 아닌 것 같다는 분명한 거절의 말을 시간차를 두고 세 번 정도 전했던 것 같습니다.

 

부르심

그렇게 서기연은 안중에도 없는 상태로 닭장 같은 GRE 학원을 다니며 1월 한 달을 보냈습니다. 선교단체든 교회든, 공동체에서 리더를 할 때에는 늘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내 마음대로 행동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마음의 자유와 온전히 내 것인 시간이 주어지니 처음에는 이제 정말 즐거운 나날들이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한 달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점점 참을 수 없이 불행한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골똘히 생각해본 결과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완전히 말라버렸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제게는 기도로 올려드릴 내면의 갈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봄까지 GRE를 마무리하고, 171학기에는 인턴을 하고, 여름방학 때는 해외인턴을 하면서 졸업논문을 쓰고, 2학기에는 자기소개서를 써야겠다는 다 짜여진 계획이 있으니 특별히 인도하심을 구할 일도 없었고, 품고 있는 누군가의 깨어짐에 절절히 공감하며 간구할 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창조적 갈등에 고통스러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삶에 진지하게 회의감을 느낄 때 즈음, ‘하나님이 개입하실 여지가 없는 삶, 은혜를 경험할 수 없는 삶, 많은 것을 얻어도 하나님을 얻을 일이 없는 삶에 관한 설교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치워버렸던 서기연 대표의 제안이 생각이 났고... 며칠간의 고민 끝에 예상오빠에게 연락을 해버렸습니다. 내가 대표를 할 수 있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고.


예상오빠를 만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왜 마음이 바뀌어서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도해보게 되었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내가 가진 객관적인 핸디캡이 있는데 그래도 대표를 해도 되는 것인지, 대표가 정확히 하는 일과 감당하는 무게가 무엇인지 등등. 그런데 그렇게 대화를 하는 와중에, 이전에 언제 느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당시로서는 저를 깜짝 놀라게 했던 감정들이 제 안에 생겨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의식보다 깊은 곳에 있는 본능적인 자아가 재밌겠다, 해 보고 싶다!’라고 외치는 듯한 순수한 설렘이랄까요? 저는 겨울나무처럼 죽은 것 같아 보이는 건조한 상태로 산지가 꽤 오래 되었었는데, 이 역할을 맡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시금 봄의 계절이 돌아오려나 싶은 기대를 하게 만드는 감정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기쁨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증거이리라, 나의 갈망이 가리키는 길이 가장 나다운 길이리라 생각하며, 서기연 대표를 저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새내기 신앙OT를 했습니다. 늦어지는 인수인계를 감내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던 예상오빠에게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회복의 길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100% 기쁨과 확신에 넘쳐서 대표를 시작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중앙위원단을 꾸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는 여전히 불안했고 무엇을 소망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제 자신을 포함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신뢰할 수 없었고, 세상의 본질도, 선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도 잘 믿지 못했습니다. 그저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받아들이며 일단 보이는 내 몫에 성실하자는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1학기를 슬슬 마무리해가는 지금, 비로소 저는 이 길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준비해주신 회복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대표라는 자리에서 서기연이라는 공동체에 깊이 연결되면서 제 안의 세계에 어둠이 점점 걷히며 아침이 밝아오고 나다움을 되찾아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시는 인생의 모든 것이 통째로 다 하나님의 사랑이었을 것이라 그의 일하심을 몇몇 사건으로 축소시키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감각의 한계로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몇 가지 은혜의 통로들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는 대표를 하게 되며 뵙게 된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이 저를 얼마나 많이 살리고 세워주었는지를 고백하고 싶습니다. 월요일 아침 8시 서기연 아침기도회에 가면 늘 계시는 송재준 교수님, 장정주 교수님, 유요한 교수님과 양현숙선교사님은 처음 보는 학생인 저를, 경계하고 오래 두고 시험해보아야 마땅할 낯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서기연 대표를 하기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믿어주시고,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교단체의 간사님들은 해당 선교단체의 학생도 아닌 저를 동일한 목자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주시고 품어주셨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저는 참 이상하고 의아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알게 모르게 따뜻하게 데워지는 영혼을 느끼며 아 내가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구나,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새롭게 만나게 된 중앙위원단 공동체가 있습니다. 왜 어떠한 이유로 중앙위원단이 저에게 감사한 존재이고 하나님의 사랑인지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중앙위원단에 대해 제 마음대로 자랑을 몇 가지 해보겠습니다. 저희 중앙위원단은 다들 토론 능력치가 보통은 훨씬 넘는 것 같은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민감한 주제가 던져지면 2-3시간이 정말 너무나 쉽게 지나가곤 합니다. 적어도 고민을 게을리 한다는 비난을 들을 일은 없을 것 같은 중앙위와 함께 캠퍼스를 품고 고민을 쌓아가는 과정을 즐거이 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또 결코 서로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데도 그럴 필요가 없이 너무나 자발적으로 함께 나눠 짐을 지는, 가볍고 성실한 공동체와 함께 일하는 것, 다양한 선교단체를 배경으로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시선과 영성과 사랑의 언어들을 배워가는 것은 모두 대표의 일이 무겁지 않고 기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늘 서로를 응원해주고 좋아해주는, 필요할 때는 꼭 나타나주는 영양제 같은 이들의 존재가 저에게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짐보다는 선물에 가까운 대표로서 수행하게 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대표를 하면서 수행하게 되는 역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많은 청자들 앞에서, 혹은 소수의 사람들과 마주앉아서, 혹은 11로도 공적인 입장을 가지고 발언하고 소통하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소통을 유도하고 돕는 것입니다. 연합에서 구심점이나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이 스스로 잘 세워지도록 돕기 위해 때로는 알게 모르게 균형추가 되기도 하고 완충제가 되기도 하는 것, 다양한 의견들을 머리에 담고 모든 입장에서 끝까지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서기연과 캠퍼스를 품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많이 사용해본 적이 없는 특정 종류의 감각을 벼리고 반복해서 사용해야 하는 이런 역할들을 감당하면서, 때로 에너지가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이 일이 저의 성정에 참 잘 맞고 즐겁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나다움을 깨달아가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2017년을 주신 하나님

처음 대표를 하기로 결정할 때, 저는 인턴, GRE, 유학 등 놓칠 수 없는 미래를 반드시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아두고 첫걸음을 내딛고 싶었습니다. 불안한 미래를 약속해주시기만 한다면, 2017년을 좀 손해 볼 수는 있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하나님은 제게 2017년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허락하신 모든 날들은 도구적으로 희생되기에는 너무나 가치 있는 날들이고, 우리는 매일 매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만나야 한다는 것을, 저는 대표를 하지 못했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제게 기쁨을 허락하시고 오늘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덕분에 2017년 역시 제게 훗날 추억할만한 대학생활의 즐거운 한 장으로 남게 될 것을 믿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럼 안녕히:-)